요한복음 33 예수님은 누구, 나의 영광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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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410회 작성일 23-10-28 18:50본문
예수님은 누구, 나의 영광은 무엇?(요한복음 강해요약33)
요한복음 8장 48-59절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내 말 안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31,32). 예수님 안에 거하면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미 자신들은 자유하다고 대꾸합니다. 자신의 조상은 아브라함이고 자신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지금 그분의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44).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격분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나온신다면 이제는 마지막까지 가보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당신은 사마리아 출신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마리아 수가성에 가서 사마리아 여자나 만나니 그 곳 출신이 아닙니까?’라며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귀들린 자’라고 비난합니다(48). ‘우리가 마귀의 자식이 아니라 예수 당신이 바로 마귀의 자식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하던 자세가 돌변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모함에 ‘자신은 결코 마귀들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문제는 공격당하는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하십니다(49). 만약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공경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대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고 그분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50).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위하셨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왕이 되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실 때 그 곳에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을 거역하는 자들을 모두 심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51).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거짓말을 가져와 죽음을 오게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진리를 가져오셔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구원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생명을 얻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거짓말로 속이고 거짓을 행하게 해서 죽음을 맛보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주시고 진리를 행하게 해서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실수록 더욱더 예수님을 대적하며 비난합니다(52,53).
‘이제 보니까 예수 당신 확실히 마귀들렸구나.’,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고 다른 많은 하나님의 대언자들도 다 죽는데 니가 죽지 않게 한다고, 너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크냐? 능력이 많다고? 당신 진짜 정체가 뭐냐?’
유대인들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육신의 죽음으로만 듣습니다. 역사상 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지 않는다’는 말이 정신나간 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당신의 정체가 뭐냐’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54,55). 예수님은 스스로 존귀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높이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십니다. 아들이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잘 아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잘 모른다’고 했다면 그 말이야말로 거짓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잘 아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사람의 뜻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부활시키셨고 그분을 높이셨습니다.
구원 또한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구원의 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시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헛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더 분명한 답을 주십니다.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이 그의 약속의 씨, 메시아가 올 그날을 기뻐했고, 드디어 메시아가 온 그날을 보고 즐거워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5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육신의 생명이 다했습니다(창25:7, 히11:13). 이삭의 탄생은 보았지만 믿음의 후손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날을 볼 것을 기뻐할 뿐 아니라 그날을 이미 보고 즐거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날을 보고 즐거워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날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죽었지만 그가 영적으로 살아서 기뻐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살아있고,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막12:26,27).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본 것처럼 말씀하시니 유대인들은 ‘오십도 안된 청년이 헛소리한다’고 비웃듯 말합니다(57).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는 더 확실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십니다(58). ‘내가 있느니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출3:14). 그리고 요한복음의 시작에서도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요1:1-3).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자마자 격렬하게 반응합니다(59, 레24:16).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대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것이 진리이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맹인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을 피해 성전 바깥으로 나가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의 말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말처럼 ‘예수님은 거짓이든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시든지’입니다. 선택지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둘 중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영광을 구하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스스로의 힘과 자격으로 영광을 구하든지,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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