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 교회는 진실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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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05-31 15:47본문
민수기 14
교회는 진실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민수기 10장 1-10절
오늘은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전두환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 전국적으로 민주화 시위 가운데 일어난 운동입니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광주 전남대 학생시위를 계엄군으로 진압함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그 당시 군부는 광주를 통제하였고 광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반국가세력에 의한 무장폭동을 진압했다고 언론을 통해 거짓으로 보도하게 하였고, 그렇게 진실을 묻히고 수많은 국민들은 잘못된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광주민주화운동이 무장폭동으로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들 중에 하나는 당시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독재 권력을 추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재 권력을 추종함으로 권력으로부터 비호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 수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권력과 돈에 길들여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올무가 지금 이 시대의 교회를 발목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도 외쳐야 하지만, 세상 속에 진실에 대해서도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불리한 일일지라도 진실을 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그래야 교회가 전하는 진리, 하나님 말씀도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입니다.
오늘 민수기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신호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회중을 움직이는 신호를 정하셨습니다. 은 나팔 두 개로 불어 나타내는 신호로 회중을 모으거나 움직였습니다(1,2).
이스라엘의 나팔 신호(3-10)
1 – 나팔 두개를 길게 불면 – 온 회중을 소집
2 – 나팔 하나를 길게 불면 – 천부장들 소집
3 – 나팔 하나를 짧고 강하게 불면 – 행진 대열로 변경
4 – 나팔 두개를 짧고 강해게 불면 – 전쟁 준비
5 – 나팔 두개를 길게 불면 - 주요 명절, 매달 초하루 제사를 위한 소집
교회는 각 시대마다 세상을 향해 나팔을 부는 파수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진리를 전하고, 진리에 대해 각성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전해야 할 교회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되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잘못된 신호를 외치면 나중에 진리의 나팔을 불더라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교회가 그와 같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잘못된 신호들을 세상에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데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나팔을 불 때 신중하게 불어야 합니다. 진실이 아닌 것에 나팔을 불어서는 안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여 나팔을 불어서는 안됩니다.
요즘 언론을 통해 보고 듣는 극우 기독교의 모습에서 잘못된 신호의 나팔을 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이라는 나팔을 불 때 전쟁이나 나라가 심각한 재난이 있을 때 불어야 할 나팔을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려고 잘못 분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극우 기독교가 그것을 잘했다 옹호하는 잘못된 나팔을 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이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동하라는 나팔을 불게 한 것이고 멈추라는 나팔을 분 것인데 전쟁 준비의 나팔을 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나팔을 불 때 신중하게 불어야 하고 진실의 나팔을 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나팔을 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공기는 냄새가 없고 맛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마시는 물에 맛이 있거나 공기에 냄새가 있다면 나중엔 지겨워서 마실 수 없다고 합니다.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물과 공기는 누구에게나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물과 공기에 내가 좋아하는 향기나 맛을 낸다면 누군가에게는 마실 수 없는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통해 누구나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편협한 생각이 희석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사람의 편견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편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마치 상수도 보호구역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상수도 보호 구역의 물을 정화해서 각 가정에 수돗물을 공급합니다. 그런데 상수도 보호구역이 오염되면 물을 정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수도 보호구역에서 오염물을 버리면 큰 처벌을 받습니다. 만약 누군가 상수도 보호구역에 독극물을 풀어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물을 나누어 준다면 사람들에게 독약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물을 나누어 주는 선의의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독을 퍼트려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개조심’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빌3:2). 여기서 말하는 개는 할례자들입니다. 할례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육체, 곧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 율법주의자들입니다. 복음의 물에 자기 의를 타서 복음을 오염시킨 거짓교사들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을 개라고 말하고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와 같은 원리로 저 또한 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생각을 섞으면 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염된 복음, 거짓을 전하는 개가 아니라 진리를 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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