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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의 정체와 하나님의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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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127회 작성일 24-08-2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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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의 정체와 하나님의 해결책 설교요약

마태복음 631-34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합니다. 세상의 마지막을 말합니다. 말세를 표현하는 적절한 말 중 하나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직전입니다. 말세의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6:5). 노아가 살았던 시대가 그랬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말세를 살았습니다. 그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죄악이 가득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24:37-39).

 

말세의 사람들의 증상 중 하나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13:14). 심판의 때가 온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심판의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죄악으로 가득 차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깨어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증거인 것입니다(6:8). 반대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 인생이 잘 나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심판의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24:42-44).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마지막 때에 스스로 주의하라라고 말씀하시며 과식’, ‘술취함’, ‘이 세상 삶의 염려에 경계하라고 하십니다(21:34). 여기서 과식은 단순히 많이 먹는 것을 넘어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뜻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방탕하게 사는 삶입니다. 술취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의 지배를 받고 무절제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입니다. 염려는 어떤 일이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방탕함과 술취함은 경계하며 죄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염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주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에서는 주의해야 할 것에서 방탕함, 술취함과 함께 삶의 염려를 동등하게 주의할 것을 말씀합니다.

방탕한 삶이 우리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 무뎌지게 하는 것처럼, 염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둔해지게 하는 죄의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염려를 죄에 빠지는 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각한 덫에 빠지고도 그것에 빠진 줄도 모르고 괴로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마태복음 6(6:19-34)에서 염려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며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25). 그러므로라는 것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근거가 부족하면 그 일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계속 염려에 빠지는 이유는 염려하지 않아야 할 근거를 모르거나, 또는 알더라고 그것을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반대로 염려하지 말아야 할 근거를 되새기고 분명히 기억한다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염려하고 염려에 빠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기려고 하기에 염려하는 것입니다.(6:25).

(2)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염려합니다(6:31-32).

(3) 염려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염려합니다(6:34).

 

결국 염려는 소유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집을 빌려서 사는 세입자는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집주인에게 말합니다. 염려를 집주인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 염려하고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염려는 그와 같은 것입니다. 염려의 정체는 인생의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기에 하는 죄인의 증상, 옛사람의 습관인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문제가 죄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내 것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죄이고,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반대로 죄를 회개하는 것의 본질은 하나님께 도둑질한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염려라는 마은 아직도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옛사람의 습관, 죄인의 증상인 것입니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계기판에 신호가 나타납니다. 가벼운 문제는 노란불이 켜지지만 심각한 문제는 빨간 불이 켜집니다. 빨리 공장으로 가서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망가집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심각한 경고등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증상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라는 마음의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염려라는 죄의 증상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내가 주인된 증상인 염려를 거두고 첫째되신 주님과 그분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33). 첫째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맡기고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5:16-18).

그렇게 한다면 우리 인생의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돌보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33, 11:28). 염려라는 죄의 증상이 나타날 때, 그것이 죄의 증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주인된 염려의 생각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이라는 생각으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찾고 따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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