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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0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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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114회 작성일 24-08-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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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복음 강해요약70)

요한복음 2115-25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요일4:8). 온 세상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셨고 사랑하십니다. 반대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아들을 보내셔서 죄로 죽은 우리를 십자가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 창조된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장 먼저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께 도착했고 나머지 제자들도 배와 잡은 물고기를 이끌고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말없이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할 이야기가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제자들을 찾아 디베랴 바닷가로 오셨지만 어떻게 보면 베드로와 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르는 예수님과 베드로만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세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주님 앞에 무슨 면목으로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고 하십니다(15). 친밀하게 부르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야라고 하셔도 되는데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것들이란 말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섯 제자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또는 여섯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입니다. 또는 잡은 물고기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도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네가 진짜 나를 믿느냐?’ ‘네가 열심히 나를 따를 것이냐?’가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입니다. 마지막 가르침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제자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셨을까요?

사랑은 관계입니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대상이 있고 대상 간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하는 사랑은 짝사랑이고 짝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은 주님께서는 이미 베드로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베드로를 사랑하시는데 베드로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질문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1).

왜 주님께서는 마지막 가르침에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제자가 되는 것의 완성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이것을 기록한 것은 이것을 읽는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같은 질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읽고 있는 너는 참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베드로는 다른 여섯명의 제자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잡은 물고기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양들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자격,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에야 진정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수많은 능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16). 그런데 첫 번째 질문과 좀 다릅니다. 첫 질문은 이것들보다라고 물었지만 이번에는 비교하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누군가 비교할 때 쉽게 잘 한다, 못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누구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나 홀로입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각을 판단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또 주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십니다(17). 주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시니 베드로가 근심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부끄러운 것 때문일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모든 것, 저의 부끄러운 모습도 아시지요?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그렇게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제자에게 주님께서는 양들을 맡기시고 자신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베드로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18,19). 이전에는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왔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베드로는 그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길을 갈지라도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면 고난의 길을 걷겠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과 같이 부활하는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침 베드로의 눈에 다른 제자를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 요한입니다(20). 어쩌면 베드로와 예수님 옆에서 누가 첫 번째로 주님을 사랑하는지 경쟁했던 제자였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미래도 궁금했습니다(21).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주님께서 너는 다른 사람 상관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22). 다른 사람과 너를 비교하지 말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겼습니다(23).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와 경쟁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비교와 경쟁은 오해만 낳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면 교만하거나 낙심하는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주님 앞에 절대평가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와 상대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각각 평가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철저하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것처럼 신앙생활의 평가 또한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얼마나 신실하였는지 절대평가를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자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밝힙니다(24,25). 그가 비록 베드로와 같이 순교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부르심에 따라 성령께 이끌려 요한복음을 기록하며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끝까지 신실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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