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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7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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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138회 작성일 24-07-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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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슬피 우느냐?(요한복음 강해요약67)

요한복음 201-18

 

부활은 단순히 죽었던 육신이 살아난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은 영원한 생명, 창조의 사건입니다.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빛이 어둠을 이긴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영원하시기에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 또한 주님의 약속대로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20:19). 성경은 그 날이 일주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합니다(1). 일주일의 첫째 날을 주일이라 부르는 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과 동시에 7일 창조의 첫째 날,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된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새 창조의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의 첫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계셨던 무덤으로 갔습니다(1).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라는 여인도 같이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5:40). 아무튼, 처음에 마리아가 올 때 누가 무덤의 돌을 옮겨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무덤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그것을 알립니다(2).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이 열려 있었기에 이미 누군가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도 주님이 계셨던 무덤으로 가서 확인합니다(3).

베드로보다 요한이 먼저 앞질러 가서 무덤에 도착했고 무덤 안을 확인합니다(4,5). 뒤에 도착한 베드로는 무덤으로 직접 들어가서 확인합니다(6). 베드로가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와 수건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7). 사라진 건 예수님의 몸 뿐이었습니다. 마치 나비가 누에고치의 허물을 벗고 나온 것처럼 그분께서 계셨던 무덤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요한도 그것을 보고 믿었다고 기록합니다(8). 도대체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도 얼마 전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처럼 그분도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11:25,26).

죽었던 나사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났습니다(11:43). 그러나 나사로의 살아남은 영원한 부활이 아닌 잠시 소생한 것입니다. 다시 산 나사로는 결국 육신의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죽었던 나사로처럼 살아난 것은 진정한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계셨던 무덤에 온 제자들은 그분께서 다시 살아난 것을 믿었지만 나사로처럼 다시 소생한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이 그분께서 반드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하리라는 성경기록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9). 그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었지만 그것을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의 부활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도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10).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또 다른 증인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11). 그녀는 슬피 울며 무덤 밖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 때문에 슬퍼했습니다. 제자들이 간 후 돌무덤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때 두 천사를 만납니다(12,13).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그 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14). 그러나 그녀는 주님을 직접 만나뵙고도 그분을 무덤 지키는 동산지기라고 착각합니다. 그렇기에 살아계신 그분께 자신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간청합니다(15).

마리아는 왜 슬퍼했습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살아계신 그분 앞에서 그분의 시신을 찾았던 것입니다. 왜 무덤이 비어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착각했습니다. 마리아가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분을 만났을 때 우는 게 아니라 기뻐했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진정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벽 앞에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슬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한 인간, 위대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면 제자들과 같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갈 것이며, 마리아처럼 슬퍼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히 부활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참된 지식이 있다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슬픔 가운데서도 우리를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퍼하고 있는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마리아는 주님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16). 마치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를 때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주인을 따르는 것처럼 마리아는 자신을 부르시는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10:3,4). 이렇게 주님께서는 그분이 말씀하신 약속대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14:18).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17).

내게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단순히 그분께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 도마에게는 자신을 만져보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20:27).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방금 떠나간 제자들처럼 자신을 육신만 부활한 인간 선생님으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아버지께로 올라갈 성경에서 약속하신 부활하신 메시아로 그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17).

그리고 주님께서는 부활의 주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을 깨달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주님의 형제된 자들에게 가서 이것을 전하게 하십니다(18). 이처럼 제자들이 아니라 마리아가 부활의 초대 증인이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믿음이 있다면 연약한 여인일지라도 그분께서는 그를 주님의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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