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2 예수님의 가심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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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278회 작성일 24-03-29 17:43본문
예수님의 가심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들(요한복음 강해요약52)
요한복음 14장 25-31절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요16:7). 예수님의 가심을 두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그분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이전 것을 버려야 합니다. 새 차를 얻으려면 중고차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처럼 이후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이전의 유익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함께 하시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그분께서 떠나셔야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심으로 오는 유익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심은 십자가에 죽으심이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심으로 오는 유익은 ‘유익’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적용해 보길 원합니다.
1. 성령께서 믿는 자 가운데 내주하셔서 깨닫게 하기 위한 가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진리의 말씀들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다른 위로자 성령 하나님께서 믿는 자 가운데 계시며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5,26). 성령님을 ‘그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이 땅에 오셨듯이, 성령 하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다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기에 말씀을 깨닫고 믿을 때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화평을 주기 위해 가심
예수님의 가심은 화평을 주시기 위한 가심입니다(27). ‘화평’은 히브리말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물들이 그분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풍성하고 만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화평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인간 세상에 화평이 깨어진 것은 죄와 사망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인간 세상에 들어왔고 화평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가심으로 참된 화평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이 땅에서 전쟁이 없는 화평이 아닙니다. 이 땅에는 계속해서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 전쟁과 다툼이 치열해 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성령님을 통한 화평입니다. 근심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참된 화평을 주시는 위로자 성령님의 화평입니다.
세상이 주는 화평은 참 화평이 아닙니다. 단지 진통제와 같이 이 세상의 고통을 잠깐 잊게 해주는 거짓 화평입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고난 속에서의 화평이고 죄와 사망을 이기는 참된 화평입니다.
3. 참 기쁨을 주기 위해 가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분의 가심의 참 뜻을 알고 주님을 믿고 사랑했더라면 그들은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보다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8).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셔야 또 다른 위로자 성령님께서 믿는 자 가운데 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심을 앞두고 그분의 백성들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안에서도 질서가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시고, 성령님은 아들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왜 기쁘냐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가심을 참 승리로 바꿔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가 되지 않고 아버지께 가심으로 승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참 믿음을 주기 위해 가심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쓰인 책이라고 밝힙니다(20:31).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의 믿음은 불완전했습니다. 조금만 어려움과 시험이 오면 넘어지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심으로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깨닫고 진정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가심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29). 만약 예수님의 가심을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 죽으심은 사람의 뜻으로 일어난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심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고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그것을 믿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 가심
유월절이 지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제자들을 붙들고 말씀을 주시는 날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통치자가 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란 사탄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만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그분을 제거하고 자기가 왕노릇 하려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을 통치할 수 없습니다(30). 사탄은 예수님의 어떤 것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아 그분의 생명을 빼앗는 것 같지만 부활로 아버지께서 그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통치자에 의해 죽으신 것 같지만 사실 예수님의 가심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순종이었습니다. 그분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31). 그리고 예수님의 가심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순종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순종의 가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처럼 또한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그분의 사랑과 그분을 사랑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요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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