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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6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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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298회 작성일 24-02-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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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강해요약46)

요한복음 131-1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심은 사랑입니다.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심도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과 징계 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 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도, 그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 또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하실 때가 되셨음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처음부터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1). 그분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끝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시며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만 사랑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3:16). 그러나 그분의 사랑과 은혜는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해당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나 선한 자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5:45). 그러나 선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선물이 되는 것처럼 사랑과 은혜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분의 백성 또한 신실하게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행하신 것처럼 그분의 백성인 우리 또한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그분께 화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반면에 예수님을 끝까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입니다(2). 예수님과의 유월절 저녁식사 때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마귀가 유다의 마음 속에 그분을 배반할 생각을 넣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 때문에 실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마귀는 그런 유다에게 예수님을 배반할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아무리 그의 마음에 잘못된 것을 넣어주더라도 그것은 받아들일지 거절할지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이브에게 뱀이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결정할 책임은 아담과 이브에게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넣었더라도 그것을 결정할 책임은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유다는 배반의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그 선악과는 자기 욕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배신하고 제자들이 떠나가며, 모든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는 길을 걸으셨습니다(1,3). 다른 복음서에서는 유월절 저녁식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만찬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4-5). 왜냐하면 주의 만찬이 주는 의미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의미가 같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누군가의 발을 씻어주는 행동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마 제자들을 깜짝 놀라며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저녁식사 전 집에 들어올 때 이미 그들의 발을 씻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발이 진짜 더러워서 예수님께서 씻어주신 것이 아니라 발을 씻어주는 행동으로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씻기시려는 예수님께 질문하며 대꾸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왜 제 발을 씻기십니까?, 절대 제 발을 씻기시면 안됩니다’(6,8). 극진한 섬김을 받아도 모자라신 분이 왜 거꾸로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십니까?’ 베드로는 백성이 왕을 섬겨야지 왕이 백성을 섬긴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을 꾸짖었던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16:22). 예수님, 절대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 안됩니다.’ 그의 기대와 생각대로 왕위에 오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의 대꾸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의미는 결국엔 예수님께서 죄를 제거하는 고난받는 종이 되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2:7).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과 함께할 영원한 천국도 없는 것입니다(8). 예수님, 절대 제 발을 씻길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절대 저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실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릅니다(9). 예수님께서 스스로 종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해 주신 것인데 베드로는 아직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을 씻기심은 많이 씻고 적게 씻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발을 씻기신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냐 받아들이지 않는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입니다(10). 예수님께서 종이 되어 나의 발을 씻어주시는 것,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것을 받아들이면 나는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결코 깨끗해 질 수 없고,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없습니다(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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