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4 사람의 아들이 들려야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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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303회 작성일 24-02-03 21:29본문
사람의 아들이 들려야 하듯이(요한복음 강해요약44)
요한복음 12장 20-36절
유월절 전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 마침내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까지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라고 믿으며 그분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대를 따라오신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해방시키고 다시 영원한 유대왕국을 건설할 메시아를 바랬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고난받고 죽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뜻대로 오신 구원자가 아니십니다. 그런 방식으로 주님을 믿는 것은 우상숭배와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일 때는 우리의 기대와 생각을 내려놓고 그분을 진정한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유월절에 예배하러 온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인 그리스 사람들도 예수님을 뵙고자 했습니다(20-22). 이제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통해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처음에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진리를 알고 싶었던 것처럼, 이제는 이방인인 그리스인들도 예수님을 통해 진리를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23). 그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나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는다’는 말은 이제 예수님이 큰 일을 치루고 왕이 되실 것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얻는 영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영광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영광을 빼앗거나 없애서 영광을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얻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내어주심으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도는 언제 가장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까? 언제 교회는 영광스럽습니까? 어떤 큰 일을 이루어 냈을 때, 아니면 으리으리한 교회당을 건축하고 많은 부를 소유했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가장 영광스러웠던 때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의 길을 걸을 때가 가장 영광스러웠습니다. 이 땅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선교사님들이 자신의 삶과 목숨을 드리며 희생했을 때가 가장 영광스러운 때였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 싸울 때가 가장 영광스러운 때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무릎 꿇을 때가 가장 영광스러운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의 아들이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을 때가 왔음을 말씀하셨습니다(24).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으시는 것을 보고 그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민족을 추수해야 할 때가 온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그것을 도리어 잃어버리지만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자기를 부인하면 예수님처럼 그분께서 가신 생명의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25). ‘자기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가 왕노릇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할 정도로 예수님께서 나의 중심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을 따른다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하십니다(26).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그러나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분께서도 그 길을 괴로워하십니다(27). 그러나 그 괴로움을 아버지께 기도함으로 이기십니다. 기도로 죽음의 길을 맞이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의식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때를 찾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28-30).
우리의 기도의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이 하늘로 올라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세상이 심판받는 것입니다(31).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께 저주와 심판을 받아 죽은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이 심판받은 일입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면 영원한 생명을 거절했기에 이미 심판받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구원받는 일이 일어납니다(32,33).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그분을 믿는 자는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고난받고 죽으시는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34). 다윗왕과 같은 메시아가 와서 악한 세력들을 심판하고 유대민족이 구원받길 원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아에 대해 반쪽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난받고 죽으실 메시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기록하고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어둠 속에 걸으며 갈 길을 잃을 것입니다(35).
빛이 있는 동안, 우리 육신의 생명이 있을 동안 그 빛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36). 그 빛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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