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8 정죄하는 사람들, 용서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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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23-09-24 00:11본문
정죄하는 사람들, 용서하시는 예수님(요한복음 강해요약28)
요한복음 8장 1-11절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관계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을 창조하시고 이브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한 몸으로 짝지어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맺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관계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님을 닮아 하나된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인간들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사람들 간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깨진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끊임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바로 관계의 문제도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 우리를 영원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그분의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 서로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장막절 마지막 날에 자신이 바로 마지막 날들에 성령을 주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요7:37,38).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그분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며 예수님을 받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수제사장들의 직무수행자들, 바리새인 니고데모까지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습니다(1). 그곳은 예수님께서 습관적으로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이 있던 곳입니다. 기도하러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요구가 가득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과 때를 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다시 성전으로 돌아가셨습니다(2). 여전히 그곳에는 예수님을 대적하려는 사람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성전으로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시 예수님을 잡기 위해 애썼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에 강제로 예수님을 잡는 것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이번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3). 이를 통해 예수님을 거짓 고소하려고 했습니다(6).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가 있는데 율법에는 이런 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4,5, 신22:22-24)’
왜 이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습니까? 먼저, 예수님의 그간의 행적을 보면 그분과 어울렸던 사람들은 그 당시 죄인들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병자, 가난한 자, 부정한 자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런 여인을 보고 용서하라고 할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예수님도 돌에 맞아 죽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 그 여자를 돌로 쳐 죽여도 된다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는 로마 식민지였기에 사형집행의 권리는 로마 행정관에게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로마의 질서를 깨뜨리는 반역자로 고소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이 상황을 이용해 예수님만 제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들은 간음한 여자 뿐만 아니라 간음했던 남자도 함께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율법에서는 둘 다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못 들은체하시며 몸을 구부리시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십니다(6). 성경에는 무엇을 쓰셨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주석에서는 그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상징하는 행동이라고 해석합니다.
모세가 시내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았을 때 그것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라고 증언합니다(출31:18). 만약 예수님의 행동이 그런 뜻이라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고 시내산에서 친히 손가락으로 쓰신 옛 언약을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모든 죄에서 영원히 구출하시는 사역을 앞두고 새 언약을 주시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요13:34,35).
예수님께서 못 들은 척하시며 땅바닥에 글을 쓰고 있으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대답을 재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 하시고 다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단, 죄없는 자가 먼저’(7,8).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해 절대 모른척하고 넘어가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죄인이었고 율법에 따라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아닌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험을 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아셨습니다.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그들 앞에 있는데, 사람들은 왕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대역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고 간음한 여인의 죄와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죄인이다. 의인이다.’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그분을 반역한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죄인들을 정죄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이 땅의 유일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9).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화살을 쏘았는데 이제 그 화살이 자신을 향해 돌아온 것입니다. 결국,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둘씩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다 돌아가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사람들이 다 돌아간 것을 보시고 여자를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라. 그리고 다시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십니다(10,11)
사람들은 간음한 여자를 정죄할 자격이 없어서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고, 여인의 죄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여자를 정죄하실 수 있는 유일한 재판장되십니다. 그런데 너를 정죄하지 않으시며 그 여자를 용서하셨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겠다고 하신 것이지 죄가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슨 근거로 정죄받아 마땅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그 여자가 받아야 할 형벌, 우리 모두가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못 본 척 넘어가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대신 그 여인의 죄의 정죄를 받으신 것입니다(요3:17). 세상을 정죄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이 땅에서 십자가에서 모든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때문에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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