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6 하나님의 때와 그분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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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466회 작성일 23-09-09 23:09본문
하나님의 때와 그분의 뜻(요한복음 강해요약26)
요한복음 7장 1-9절(1-24절)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자신이 태어날 날을 선택해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시간과 때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때를 정확히 주장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해를 멈추게도 하시고 나아가게도 하시는, 모든 시간과 때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때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그냥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과 때에 맞게 살아야 할 책임이 각자에게 있습니다. ‘오래 살았느냐, 짧게 살았느냐’가 인생에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와 시간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짧고 고된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평가받는 가치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관계없는 시간과 때를 따라 살았다면 그 인생이 아무리 오랫동안 풍요로운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의미없는 인생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께서 계산하시는 시간과 때를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계산하시는 시간과 때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마6:33).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일으키신 후에도 한동안 갈릴리에 머무셨습니다. 그 이유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신 일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기회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지역으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대지역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장막절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2).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유대 땅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낼 것을 제안했습니다(3). 예수님을 부추겼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5).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도 영광을 얻길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라’는 시험을 받으셨는데(눅4:9), 지금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께 그 능력을 드러내라는 사탄과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세상의 영광을 받는 것이 목적이셨다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사람들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맞추셨습니다(6-9). 예수님의 시간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표와 그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들의 기대와 때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때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는 바로 인간적으로 가장 고통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셨던 십자가였습니다. 인간적인 영광을 받으실 때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시며 죽으실 때가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때였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명절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가셨지만(10)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신 것이 아닌 하나님의 때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지만 사람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때를 사셨습니다.
명절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11). 어떻게든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서 트집을 잡아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갈렸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시며, 사람들을 먹이시는 좋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또는 예수님을 종교사기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입을 다물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12,13).
예수님께서는 명절 중간쯤 성전으로 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14).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놀랍니다. ‘어떻게 갈릴리에서 랍비에게 교육도 받지 않은 자가 이렇게 말씀을 잘 가르친다는 말인가’하며 놀랐을 것입니다(15).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가르침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는 자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려는 마음으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18).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언자 모세의 예를 들며 ‘그들이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고소했습니다(19). 사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같은 유대인 지도자들은 스스로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말씀이신 예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율법의 참 목적으로 그것을 지킨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율법을 다루었다는 것입니다(20,21).
예수님께서는 할례 규례를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22,23). 할례는 이스라엘 남자가 난지 8일째 되는 날 행하는 믿음의 의식입니다. 그런데 만약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할례가 먼저입니까? 둘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할례가 먼저라고 해석했습니다. 모세의 율법보다 먼저 주어진 명령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안식일에 할례를 행해서 그를 온전케 하는 것이 옳다면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온전케 하는 것 또한 당연히 옳은 것이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온전케 하심으로 육신뿐만 아니라 우리 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셔서 참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성취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판단으로 예수님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24).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율법을 지켰지만 그 목적은 자기들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들의 때에 예수님을 통해 형님 예수님이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자신들 또한 영광을 얻기 바랬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때와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은 동시에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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