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4 생명의 빵을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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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550회 작성일 23-06-23 23:24본문
생명의 빵을 먹으라(요한복음 강해요약24)
요한복음 6장 41-59절
자녀들이 꼭 먹어야 하는 걸 먹이지 못할 때 부모의 마음은 안타깝습니다. 반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맛은 있을지 몰라도 건강을 해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영적인 생명의 길은 힘들고 좁은 길 위에 있습니다. 반면에 영적인 건강을 해를 끼치는 것들은 쉽고 넓은 길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마7:13).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바로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하셨습니다(41). 그 때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합니다. ‘분명 우리가 예수에 대해 아는데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냐’고 말합니다(42).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참으로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면 광야에서 옛 이스라엘이 만나에 대해 불평하며 수군대는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 만나의 기적을 맛보았을 때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날마다 만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나를 먹으며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만나에만 익숙해졌습니다. 만나에 대한 백성들의 생각이 기쁨과 감사에서 불평과 불만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참으로 주시려는 것, ‘하늘의 빵 되시는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니 그분을 향해 이제는 수군거립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참 빵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들이 기대하는 이 땅의 빵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4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대언자들의 글을 인용하시며 ‘그들이 다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으리라’ 이사야 대언자의 글을 통해 지금은 하나님께서 모든 자녀에게 가르치시는 메시아의 때임을 말씀하십니다(45). 옛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가 주님의 약속대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약속하셨는데 주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고 화평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사54: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이 바로 이사야 대언자의 대언이 성취되는 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교훈을 들려주셨는데 사람들이 듣는 귀가 없어서, 들으려는 마음이 없어 듣지 못하고 평안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44).
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잘못되어었거나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고, 그분의 가르침은 완전합니다. 다만 그분의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선생님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딴 곳에 있는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마음이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것에,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생각이 고정되어 있기에 예수님께서 더 분명하게 가르칠수록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요1:18). 그러므로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46) 아버지께로 오신 분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분을 믿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47).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직접 보고도 불평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그 땅에 사는 거주민들만 보고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고 절망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 앞에서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앞에 참 생명의 빵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취하면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참 생명의 빵이 바로 그들의 눈 앞에 있습니다(48).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빵’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주는 살’이라고 하십니다(51).
예수님께서 말씀을 더 분명히 하면 할수록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분쟁이 일어납니다(52). 이 땅의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 하늘의 것을 말씀하셔도 이 땅의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것은 이 땅의 것들을 보는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것을 왜곡하고 변질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까지도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53).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54-58). 이 땅의 것을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 걸림이 됩니다. ‘하늘의 빵’이라는 말도 이해하기 힘든 말씀인데 ‘살과 피’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군대와 싸울 때의 일입니다. 다윗왕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신실한 부하 셋이 있었습니다. 전쟁 중인 어느날 다윗이 ‘자기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에 우물의 물을 마시고 싶다’고 혼잣말을 말했습니다. 당시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신실한 부하들이 다윗의 뜻을 이루고자 목숨을 걸고 적진에서 물을 길어 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그 물을 땅에 부어 하나님께 드리며 그들이 가져온 물을 ‘그들의 피’라고 고백했습니다(삼하23:17). 다윗이 자기 부하들의 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들의 목숨과도 같은 그 물을 결코 마실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인 피를 쏟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은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40, 54).
그리고 그분을 믿는 것은 그분 안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그분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56).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주님 안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과 동시에 주님을 내 마음 가운데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생명의 빵을 먹는 자는 그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빵을 먹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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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생명의 빵을 먹으라_요한복음 강해24_설교요약.pdf (133.2K) 5회 다운로드 | DATE : 2023-06-23 23: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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