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 참 안식을 주시는 연못(안식일을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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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640회 작성일 23-05-19 23:08본문
요한복음5장 1-18절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줄 수 없습니다. 참 안식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안식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속할 때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인해 몸은 잠시 편할지 몰라도, 결코 참 안식은 누릴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그 안식의 복을 영존하는 생명이라고 표현합니다(요3:16).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존하는 생명과 참된 안식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갈릴리 가나에 기적을 베푸셨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1). 명절이 되면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한편 예루살렘의 양을 매매하는 시장 근처에 ‘베데스다’라고 불리는 연못이 있었습니다(2). 이 연못 주위에는 자비를 구하는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3). 왜냐하면 ‘가끔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연못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라도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소문난 그런 연못이었기 때문입니다(4).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연못 주변은 불치병 환자들로 붐비는 비참한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움직이면 서로 먼저 들어가고자 치열하게 경쟁하는 살벌한 장소였습니다(7). 겉보기엔 물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에게 치유의 기회를 주는 자비의 연못 같았지만 치유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에겐 매번 헛된 희망고문만 하는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머물며 38년동안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병자가 있었습니다(5).
그 병자가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프신 곳이 있으셔서 거길 가신 것이 아니라 38년된 그 병자를 만나기 위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파 누워있는 그를 보며 물으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게 되길 원하느냐?’(6)
예수님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온전하게 되고 싶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인데 그 병자는 예수님께 기대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선생님, 제가 연못에 내려가고 싶은데 저를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서 못 가니 여유가 되신다면 저를 좀 옮겨주시겠습니까?’라는 뜻으로 예수님께 대답합니다(7).
그 병자는 자신 앞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를 몰랐고, 그분께서 영존하는 생명까지도 주실 수 있는 분인지도 잘 몰랐으며, 그리고 정작 자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단지 사람들과 경쟁해서 1등으로 연못에 내려가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38년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구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참으로 어떤 상태인지도 모릅니다. 구원은 경쟁해서 1등을 해야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얻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38년된 병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참 구원은 노력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만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노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엡2:8,9).
우리 또한 이 세상에서 잘못하면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와 같은 착각 속에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베데스다의 병자처럼 주님께 기도하며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남들을 이기고 살아남는 은혜를 달라고 잘못된 요청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잘못된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바로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8). 그 순간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9). 38년만에 육신의 안식을 얻은 것입니다. 자신을 치유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수많은 군중 속에서 그분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13). 그리고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배하고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 위해 주신 안식일에 그 병자는 38년 만에 육신의 안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 안식을 주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죄의 짐을 진 모든 사람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마11:28-30). 우리에게 참 안식과 영존하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29). 멍에는 주인의 말에 복종하게 하는 굴레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께 배우고 그분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혼을 위한 참 안식을 찾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존하는 생명을 얻고 영원한 참 안식이 있는 하나님 왕국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38년만에 치유받은 병자의 소식을 듣고 유대인들은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축하하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니라 ‘왜 안식일 법을 어겼느냐?’고 추궁하기 위해 찾았습니다(10). 38년만에 육신의 안식을 얻은 자를 죄인처럼 취급을 합니다.
안식일에 치유받은 자를 대하는 유대인의 모습 속에서 사랑없이 형식만 남아 버린 종교인의 모습을 봅니다. 율법의 겉모습은 철저하게 지키지만 정작 율법의 정신은 빠져버린 알맹이없는 빈껍데기 종교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마23:23).
원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막2:27).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며 그분 안에 참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이집트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유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신5:15). 이것이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참 안식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아 완전한 자유를 주신 날입니다. 안식일이 그림자라면 안식의 실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병고침을 받은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에게 ‘네가 온전하게 되었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4). 언뜻 들으면 38년동안 병든 이유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 ‘다시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죄를 짓지 말라’고 한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의 참 뜻은 ‘안식일에 너에게 안식을 준 분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참 안식을 주시는 그리스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몸은 건강을 되찾았더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심한 것,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죄는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요16:9). 더 심한 것이 생기는 것은 바로 진짜 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밝히면 유대인들이 어떻게 대할지 알면서도 온전하게 된 병자는 유대인들을 찾아가서 ‘자신을 온전케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고발합니다(15). 이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추궁하기 시작합니다(16).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17).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분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시는 일입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백성들을 해방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사탄에게 종노릇하여 죄와 사망 가운데 묶여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고 하나님왕국의 백성으로 삼으신 일입니다. 그것이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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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참 안식을 주시는 연못_요한복음 강해19_설교요약.pdf (147.8K) 5회 다운로드 | DATE : 2023-05-20 23: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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