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을 기도입니까 저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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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382회 작성일 24-01-06 15:48본문
우리의 말은 기도입니까, 저주입니까?(설교요약)
베드로전서 2장 18,23절
우리는 보통 눈을 감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만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전부가 아닙니다. 기도의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과 따로 시간을 갖는 기도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기도는 우리의 삶 전체,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기도에 대한 명령을 좁은 의미만 해석하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기도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우리의 삶 전체를 두고 말한다면, 이 말씀은 우리의 삶과 일상 속에서 모든 말들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는 일상의 말들이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말들은 왜 기도가 되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말들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습니다. 백성들의 삶 속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구출받고 광야의 삶 속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들의 입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이집트를 구출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상 속의 말들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출16:7,8, 민14:26-28, 말3:13-15). 그들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했든지 하지 않았든지 하나님께서는 ‘내 귀에 말한 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상 속에서 했던 모든 말들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일상 속에서 했던 말을 ‘내게 했던 말’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 속에 말들이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반대로 일상 속의 말들이 기도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완전하고 올바른 사람’입니다(욥1:1).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완전함과 올바름은 어디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까? 바로 그가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전 재산을 잃고 자녀들도 잃고 심지어 자신의 건강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욥1:22, 욥2:9-10).
욥에 대한 사탄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욥의 재산이나 건강을 빼앗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탄의 최종 목표는 욥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을 저주하고 비난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욥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말들을 하게 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목표였습니다. 욥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실패했습니다. 욥은 고난 가운데서도 저주를 말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완전하고 올바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마15:18-20). 말의 문제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들이 기도가 되려면 마음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늘 함께 걸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당하게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의식하며 인내하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벧전2:19,23).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지만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맡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항상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하는 말들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기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가운데 수많은 어려움과 부당한 고통을 당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원수를 향한 분노하는 시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하는 울부짖음이었기 때문에 시편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높으신 어른만 곁에 계셔도 말하는 것을 조심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른이라면 주위에 어린 자녀나 어린이가 있으면 말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안에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계시다고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살전5:17).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말들은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 일상의 말들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는 말들이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잠언 3장
5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너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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