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0 그러므로,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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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429회 작성일 23-12-23 22:07본문
그러므로, 그러므로(요한복음 강해요약40)
요한복음 11장 1-16절
요한복음11장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1).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그들은 남매입니다. 이들은 베다니 출신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큰 근심이 있습니다. 하나뿐인 오라버니가 중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래서 누이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사람을 보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세 남매 중에 ‘마리아’라는 여인을 강조합니다(2). 왜냐하면 그녀가 나중에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전합니다(3). ‘사랑하시는 자’라는 것은 이미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누이들은 ‘예수님, 빨리 오셔서 저희 오라버니를 치료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들이 있는 곳은 유대지역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음을 무릅쓰고 오셔야 하기에 직접 부탁하기가 차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계신 곳은 유대를 넘어 침례자 요한이 침례를 주던 곳이었습니다(10:40, 1:28).
그러나 누이들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입니다. ‘예수님, 오셔서 제발 우리 오라버니 좀 살려주세요.’ 예수님께서도 그들 남매를 사랑하셨습니다(5).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소식을 들으시고 이르시길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일로 영광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4).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을 때 사람들은 아마 이전에 병자들을 온전케 하셨던 것처럼 나사로가 죽기 전에 살리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실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장소에 그대로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6).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고,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면 빨리 가셔서 그를 치료하시든지, 아니면 지난번 귀인의 아들을 말씀으로 온전케 하셨던 것처럼 말씀만으로 나았다고 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있던 장소에서 이틀을 머무십니다. 그리고 6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라고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므로 얼른 뛰어가 그를 위해 기도하고 고쳐주었다’라고 해야 맞는 말 같습니다. 아니면 ‘만약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다. 그런데 그는 움직이지 않고 이틀을 더 기다렸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고, 그러므로 이틀을 머무셨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옳은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사55:8,9).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기대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재촉을 거절하셨습니다. 메시아라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드러내라는 형제들의 요구도 거절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 것도 거절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이 고난과 핍박을 당하실지라도 결국 큰 영광을 받고 메시아가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입니다. 고난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때와 뜻에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로의 죽음을 앞두고도 그리하셨습니다.
이번에 예수님은 이틀을 머무신 뒤에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로 들어가자’라고 하십니다(7). 유대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말렸습니다(8). 예수님께서는 ‘낮이 열두시간’이라고 하십니다(9,10). 지금은 하루가 24시간으로 계산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하루를 12시간으로 계산했습니다. ‘열두시간’이라는 말은 ‘하루 종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이 되시기에 예수님께서 계시면 낮이고 계시지 않는다면 밤이라는 뜻입니다.
빛되신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해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이제 내가 그를 깨우러 간다’고 하십니다(11). 제자들은 나사로가 진짜로 잠에 들었다고 생각합니다(13). 그래서 예수님께 ‘나사로가 잠 들어있다면 다시 몸이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12). 그러나 예수님께서 잔다고 하신 것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14).
그러나 실제 하나님 앞에서 육신의 죽음은 자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몸은 죽었지만 하나님 앞에 잠을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을 다 깨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그는 죽은지 4일이 지났습니다(17). 예수님께서는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지체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나사로는 죽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겐 기다리는 것이 때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너무나 중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부름받아 약속의 아들을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뜻대로 서둘렀을 때 이스마엘을 낳았고, 인간의 뜻대로 서둘렀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망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살아있을 때 그 곳에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통해 제자들의 믿음이 자라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15).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지만 부활하실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지역으로 들어가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을 던질 수 있는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로 가자’라고 하십니다(15). 그러니까 제자 중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합니다(16). 디두모는 헬라식 이름이고 도마는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쌍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해야 할 대답 같은데 요한복음에서는 도마의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마가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이루러 가시는데 제자들인 우리도 목숨을 걸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유대로 가서 혁명을 일으키실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가 잘 알지 못하고 했던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했던 고백을 요한복음에서 기록하는 것은 바로 제자들이 마땅히 예수님을 따르며 해야 할 고백임을 도마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입니다(눅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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