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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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209회 작성일 24-08-31 23:43본문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설교요약
시편 42편 1-5절
고난 가운데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시편42편의 부제목을 보면 ‘고라의 아들들을 위한 마스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마스길’이라는 말은 ‘깨닫고 생각한다’는 의미로, 깨닫고 생각하여 교훈을 주는 시라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시편42편을 읽고 듣는 고라의 자손들이 그것을 깨닫고 생각하며 그 가운데 교훈을 얻으라고 쓴 시라는 것입니다.
우선 고라는 레위 지파에 소속된 자입니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이 속한 지파로 레위지파에 소속된 자들은 제사장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성막을 직접, 간접적으로 섬깁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교회를 전담하여 섬기는 목회자들이 속한 집단이라고 비유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섬기는 분파였습니다. 그들의 조상 고라는 반역으로 인해 죽임당했지만 반역에 가담하지 않은 고라의 자손들은 다윗왕 시대 때 성전에서 찬양하는 역할을 맡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시편42편을 쓴 고라 자손에 속한 시편 기자에게 큰 어려움이 닥쳤고 찬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목마른 사슴으로 비유합니다(1,2).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이는 것처럼 시편 기자의 마음도 그와 같이 애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애타게 찾았지만 그분께서 자신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주변에 있는 이웃들도 고난 당하는 그를 보며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비웃습니다(3). 그는 그와 같은 고통 가운데 밤낮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합니다. 지난날 이웃들을 데리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날들을 기억합니다(4). 지금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라해 보이고 마음을 쓰립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허랑방탕하게 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겼던 자입니다. 그런데 삶에 고난이 찾아왔고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낙심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 때 시편 기자는 정신을 차리고 말합니다. 절망적인 환경을 보지 않기로 결단합니다. 고통을 주는 환경으로 인해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자기 마음을 돌아보며 자기 자신에게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너는 왜 낙심하느냐!, 너는 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리고 “고난 받기 전과 같이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여라”(5)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한 주님이시라고 믿는 것입니다.
여름철 거대한 태풍이 찾아옵니다. 태풍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오는 태풍을 피할 수 없습니다. 태풍이 올 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피해야 합니다. 낙심하고 불안한 마음을 거두고 가장 안전한 곳이신 하나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수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던져졌습니다(행16:23). 그들의 인생에 태풍이 찾아온 것입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고난과 고통의 환경 속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과 실라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행16:25).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고 찬송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도리어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런 환경에서 찬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비록 자신들이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했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부당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고통을 견디라고 말씀합니다(벧전2:19). 잘 행하면서도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의심하면서 끈기있게 견디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합니다(벧전2:20).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 고난 가운데 견디신 우리의 본이고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벧전2:21). 고난 가운데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당하거나 이유없이 다가오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인내로 그 시간을 이겨낸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견디는 고통의 시간이 의미없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받으시는 시간,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의식하며 걷는 인내의 시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시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롬10:11). 그분을 의식하며 고통 가운데 인내하며 따르는 인생은 결코 부끄러운 인생이 아닙니다.
시편 42편의 기자처럼 낙심되고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5).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인내합시다. 고통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을 때 주님께서 그 시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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