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5 다 이루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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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222회 작성일 24-07-13 14:26본문
다 이루신 예수님(요한복음 강해요약65)
요한복음 19장 17-30절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마6:25). 만약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 이후에 이어지는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그 이후의 삶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땅을 살고 있지만 사는 이유가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명 또는 소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의 부르신 소명이 있고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면 언젠가 우리의 삶에 대해 반드시 평가받을 날이 올 것 또한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마치는 시간은 죽음입니다. 죽음 이후에 그것을 평가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끝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잘못해서 또는 가진 것이 없어서, 병들어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 전에 세상 재판을 받으셨지만 그 재판은 부당한 것 투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당한 재판을 통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판관은 그분의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재판관 또한 세상 권력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십자가 사형이라는 부당한 선고를 내립니다.
17절부터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장면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단 한구절로 설명합니다(17). ‘그분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억지로 십자가에 끌려가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께서 아버지의 부르심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데 이삭 또한 스스로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과 같았습니다(창22:6).
히브리어로 골로다(해골)라고 하는 장소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18). 그들은 바로 앞에서 나온 수제사장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실제로 사형을 집행한 사람들은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이지만 그분의 죽음에 있어 실제적인 책임은 바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른 두 사람도 같이 십자가형을 당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그분의 죄명(유대인들의 왕 나사렛 예수)이 걸게 했습니다(19). 그분의 죄명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20). 그 말은 당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말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십자가에서 온 세상을 향해 드러내셨습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죄목이 틀렸다고 항의했지만 빌라도는 그들의 항소를 기각합니다(21,22).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분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모든 사람들을 살리시는 것임을 드러냈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 말씀에 따른 성취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실 동안 군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려고 했습니다(23). 그분의 겉옷을 두고 군사들이 제비뽑기를 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이 바로 성경기록의 성취라고 증언합니다(24, 시22:18, 마27:46, 시22:1). 시편22편의 고난받는 의인에 대한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에서 군사들이 제비뽑는 옷을 통으로 짠 겉옷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그것이 제사장의 옷과 비슷한 것처럼 묘사합니다(출28:39). 예수님이 바로 우리 죄를 제거하시는 참 대제사장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십자가 곁에 따라온 사람들 중에 그분의 육신의 어머니, 이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또 한 사람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25).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당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시고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마리아를 ‘너의 어머니’라고 가리킵니다(26,27). 그 후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제자에게 맡기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참 공동체는 이런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가족은 육신으로 맺어진 공동체이지만 예수님의 죽음 이후 참 가족은 바로 그분의 죽음으로 맺어진 영적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가 바로 영적인 가족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영적 가족으로서 서로 돌보며 사랑하며 그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죽음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아시고 ‘내가 목마르다’고 하십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며 얼마나 목이 마르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분께서 하신 한마디의 신음 또한 성경기록의 성취를 이루시기 위한 말씀이라고 기록합니다(28, 시22:15).
군사들이 식초를 우슬초에 달아 예수님의 입에 대어 먹게 하였습니다. 이 또한 성경기록의 성취대로 됩니다(29,30, 시69:21). 다른 복음서에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 우슬초를 요한복음에서는 언급합니다. 이 또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출12:22). 그 후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30).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온전한 순종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목숨이 끊어져 머리를 숙이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개를 숙이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으시며 하신 마지막 한마디, 마지막 신음소리, 마지막 행동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복종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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