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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4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명령이고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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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사 댓글 0건 조회 245회 작성일 24-04-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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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는 것이 명령이고 열매입니다(요한복음 강해요약54)

요한복음 157-17

 

사랑은 본질적으로 좋은 말이지만 그것을 어디에 쓰는냐에 따라 좋은 것이 될 수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사랑의 예를 들면, 사랑해서 안되는 대상을 사랑할 때 그것은 나쁜 것이 됩니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면 결국 그것으로부터 배반당합니다. 또한 한 남자가 아내보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서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좋은 것인데 사랑의 기준을 잃어버리면 사랑은 오히려 나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이 기준이고 어디에 근거해야 합니까?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창조된 모든 것에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구원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기에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는 사랑할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고 자기 목숨을 다해 우리를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부와 참 포도나무와 가지는 하나의 연결 되어있는 관계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 가지에서 열매가 맺히길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사랑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를 맺는 가지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 사랑이 빠져 있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그분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고전13).

 

예수님께서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깨끗케 해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지만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태워 없애질 운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단절된 것이고 하나님과 끊어진 인간의 결말은 멸망, 영원한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면 원하는 바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7).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큰 특권중 하나는 그분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때 농부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농부의 돌봄과 사랑에 반응해 풍성한 포도열매를 맺을 때 농부는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5:16).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와 행동과 마음은 일치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과 믿음의 행동, 마음이 일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실 때 그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9,10).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말입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하려면 누군가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와 죄인된 우리를 위해 먼저 목숨을 내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사랑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 사랑을 주어도 받지 않으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시는 사랑을 받는다면 사랑을 주는 사람도 기쁨이 있지만 그 기쁨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1).

사랑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 간에 서로 사랑할 때도 기쁨이 있지만, 참 기쁨은 창조주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명령들을 따르면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명령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12).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친구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입니다(13).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자신을 인간의 몸을 입고 종처럼 낮추시고 우리를 그분의 친구로 대하시며 목숨 다해 주신 사랑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와 같이 사랑해 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의 종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그분의 자녀가 받는 사랑이고 그분의 친구가 받는 사랑으로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원수나 죄인 따위가 받을 만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있고 그분을 사랑하여 그분의 명령을 행하면 그는 주님의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14).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구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15). 성경에서 친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계가 다윗과 요나단일 것입니다. 친구 요나단이 죽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친구 요나단을 기억했습니다.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았습니다(삼하4:4). 그는 장애가 있었지만 그를 요나단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요나단은 이 땅에 없지만 친구 요나단이 받을 은혜를 그에게 준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그와 같은 과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불러주신 것을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16). 우리가 주님의 친구로 불려진 것은 온전히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2:8,9).

우리 자신에게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이나 요건이 없지만 그저 주님의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우리에게 그분의 열매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16). 바로 사랑하는 열매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께 순종하는 열매를 기대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기를 바라셨기에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17).

농부가 포도나무 가지에서 풍성한 포도 열매를 기대하며 그것을 돌보는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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